설날에 할아버지댁에서 가져온 청계란을 자작 부화기로 부화하여 10알 중 총 3알을 부화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부화기에 입란한지 만 21일을 채운 3월 2일에 1마리, 3월 3일에 2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났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병아리가 부화한지 10일 동안의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1. 7일간의 삶, 까비
까비는 부화에 성공한 3개의 알(5번, 3번, 9번) 중 9번 알에서 태어난 녀석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우량아였습니다. 파각에 15시간이 넘게 걸린 까니(5번)와는 달리 마치 알을 파괴하다시피 하여 서너시간 만에 태어난 녀석이었죠(물론 3번 설이도 그랬습니다).
모이도 무척 잘 먹고 보송보송하니 덩치도 가장 컸습니다.
병약한 5번 녀석이 죽을 것 같아서 육추기 안에서 파일로 칸막이를 치고
따로 5번 녀석에게만 노른자를 줬었는데
달라진 환경에 조금 불안해하며 삐약삐약하다가 금새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밤이 늦었으니 따뜻한 아랫목(온열패드 위)에서 잠을 자야겠다는 3번 설이와는 달리 9번 까비는 계속 5번 녀석을 찾았습니다.
3번 설이가 무심하게 잠을 자자 콕콕 쪼아가며 깨웠고 마지못한 설이가 몇 번 저를 빤히 보며 삐약삐약하더니 9번 까비를 보고 뾱뾱하더니만 다시 자더군요.
5번 까니(병약한 병아리)가 파일벽을 밀치고 건너오자 그제야 셋이서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잤습니다.
위의 사진은 3월 8일, 부화한지 6일째에 찍은 사진입니다.
까비는 다리도 굉장히 굵고 덩치도 다른 병아리에 비해 1.5배 가량 커보였습니다.
까비는 잠이 많은 편이었지만 어렸을 적 학교 앞에서 사온 노란 병아리들이 병약하게 꾸벅꾸벅 자다가 죽는 것과는 달라보였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단지 '태어난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아기니까 먹고 자는 게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3월 9일 아침, 이사하던 날 이른 아침에 보니 다리를 쭉 뻗고 엎드려 있더군요.
종종 병아리들이 따뜻한 온열 패드 위에서 널부러져서 자기에 잘 잔다고만 생각했는데 안 움직이는 겁니다.
저희가 가까이 가자 덩달아 깬 다른 병아리들이 까비를 콕콕 찍었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차! 싶어 육추기 문을 열고 꺼내보니 까비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전조증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라곤 그저 다른 병아리들보다 잘 먹고 잘 잤다는 것 정도였겠지요.
즉, 저희가 보기엔 문제가 될만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희는 이 전 날까지도 제일 먼저 부화했지만 병약한 5번 까니가 죽을까봐 전전긍긍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9번 까비가 왜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목덜미가 약간 혹이 난 듯하게 보였는데 그게 그 부분이 털이 많이 빠져서 그렇게 보였던 건지 아니면 정말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랬던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여기저기 검색하고 알아본 뒤 추측하는 바로는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심장에 무리가 가서'입니다.
병아리를 너무도 키우고 싶어해서 장장 3년을 졸라 키우게 된 큰 아이(6학년)는 까비가 죽어서 9일 이사하는 내내 툭하면 어딘가를 보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곤 했습니다.
꽤 컸다고 웬만해선 울지 않던 아이인데 말입니다.
결국 그날 잠잘 때도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병아리가 죽은 것도, 아이가 병아리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것도 마음이 아프지만 이번을 계기로 아이는 또 다른 성장을 하겠지요.
2. 아픈 손가락, 병약한 5번 까니
5번 까니는 아픈 손가락입니다.
부화기 안에 있을 때 온도가 40도에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그 옆의 7번 알에서 배어나온 흰자가 노랗게 굳으며 5번 알 껍데기와 붙는 바람에 알들끼리 떨어지는 과정에서 새끼손톱보다 약간 작게 껍데기가 떨어져 나갔던 알에서 부화한 병아리였기 때문입니다.
껍데기가 떨어져 나간 곳에 남은 난막으로 열흘 넘게 버티며 태어난 병아리였고, 부화에 실패한 줄 알고 상심하던 저희에게 제일 먼저 알 속에서 "삐약삐약"하며 '토토톡' 파각하고 나와 희망을 준 녀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5번 까니는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부화한지 3일째 되던 날까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어서 안 되겠다 싶어 면봉에 따뜻한 물을 적셔 눈을 문질러주었습니다.
양쪽 눈을 그렇게 억지로 떼어준 뒤, 다음날도 눈을 떴는지 열심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5번 까니는 계속 몸이 좋지 않은지 털이 잘 마르지 않은 상태였고 눈도 잘 뜨지 못했고 심지어 비틀비틀 거리며 모이통이나 물통을 잘 찾지도 못했습니다.
아마 눈이 안 보여서 잘 찾을 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왼쪽 다리도 문제가 있는지 잘 굽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병아리들이 웅크리고 잠을 잘 때 서서 삐약삐약하다 비스듬히 기울어지다 겨우 웅크리거나 아니면 다른 병아리들이 깔고 앉거나 눌러줘야 웅크릴 수 있었습니다.
5번 까니야말로 오늘 갑자기 죽는다고 해도 모두가 수긍할 만한 그런 상태였습니다.
생명은 생각보다 갑자기, 쉽게 사라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생각 이상으로 질기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제일 먼저 태어났기에 부화한지 11일차가 된 까니는 이제 눈도 잘 뜨고 스스로도 잘 앉습니다.
솜털도 다시 많이 났고 보송보송해졌는데 항문 막힘증이 있는지 계속 똥을 달고 삽니다.
항생제를 먹여야할까 싶긴 한데 잘못하면 독해서 죽을까봐 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일주일동안은 제가 5번 까니를 보고 '모자라고 몸도 불편하고 예민하지만 착한 우리 형'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다리가 안 구부러져 몸도 불편하고 눈도 잘 안 보여 물통 밖만 잔뜩 쪼다가 지나가던 다른 병아리가 치는 바람에 물통에 머릴 박히는 바람에 한 모금 마셨다가 다시 또 물통 밖만 쪼고, 그러길 몇 차례 하자 겨우 물통의 위치를 알아낸 녀석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민합니다.
병아리를 열흘 가량 키우면서 알게된 것은 "삐약삐약"은 결코 기분 좋은 소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 아기들이 기저귀 갈아달라고 울거나, 배고프다고 울거나, 춥거나 등등 불편할 때 우는 소리가 있듯이 병아리들의 삐약삐약은 불편할 때, 불안할 때 내는 소리였습니다. 적어도 청계병아리들은 그렇네요.
5번 까니는 어두우면 어둡다고, 모이통과 물통 채워주려고 육추기 문을 열어도, 불을 켜거나 가까이에서 지켜봐도 무조건 삐약삐약이었습니다. 부화기에서 육추기로 옮겼을 때도 30분 넘게 삐약삐약하고 있어서 걱정이 됐을 정도였습니다.
5번 까니는 조심성도 많고 경계심도 많아서, 요즘 육추기 문을 열기만 하면 튀어나오는 3번 설이와는 달리, 설이가 몇 날 며칠 툭하면 밖을 나와 돌아다니는 걸 본 후에야 이제야 문 바로 앞까지 나왔다가 바로 들어가는 정도입니다.
그렇게 나오기까지도, 처음엔 설이가 나갔다고 걱정돼서 삐약삐약하다가 그 다음엔 경계하느라 깊숙이 들어가 있고, 그 다음엔 열린 문 경첩쯤에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밖을 구경하다가 이제야 문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까니와 설이를 보면서 비교가 돼서 그런지 병아리들도 성격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예민함도 많이 누그러진 건지, 우리집에 적응한 건지 모르겠지만 저희 아이들이 잘 때 병아리들도 숙면을 취합니다. 사람이 돌아다니든 말든 죽은 건가 싶을 정도로 미동이 없어서 의심스러워 몇 번 지켜본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3. 호기심 많은 3번 설이
3번 설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눈이 똘망똘망해보였던 병아리입니다.
병아리들이 다 똑같이 멍청할 거란 제 생각과는 달리 호기심도 많고 모험심도 많아서 뭐든 쪼아보고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이를 주거나 바닥에 깔아둔 키친타올을 갈아주려고 육추기 문을 열면 설이가 튀어나옵니다.
처음엔 열린 문 위에 올라오기만 했었는데 이 녀석이 갈수록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습니다.
며칠 전, 큰 아이가 3번 설이를 교육시켰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육추기 문을 두드리면 문을 열어준다는 걸 알려줬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들었는데, 그저께 아침에 청소하려고 아이들 방에 들어가서 육추기 앞을 지나가는데 저를 보자 누워있던 설이가 후다닥 일어나더니 정신없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물론 저는 병아리들이 알아듣든 말든 "미안~ 난 열어주지 않을 거야"라며 문을 열어주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어제 아침에도 청소하겠다고 육추기 앞을 지나가는데 이 녀석들이 이제 문을 쪼지 않더군요.
저 인간(저)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나봅니다.
하루가 다르게 호기심도, 활동 반경도 더 넓어지고 똥도 그만큼 많이 싸고, 꽁지깃도 하나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50cm 가량은 푸다닥거리며 반쯤 날다싶이하여 이동하기도 합니다.
육추기 문을 열어주면 문이 닫힐새라 푸다닥 날다시피 나와 아이 다리 위에 앉습니다.
그러곤 잠깐 구경하다가 아이 손목에 있는 시계를 콕콕 쪼아보곤 내려와 방을 돌아다닙니다. 아직까진 육추기 주변 1m 안에서만 돌아다니는데 아이들이 침대에도 데리고 올라갈까봐 계속 아이들에게 침대에는 데리고 올라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고 있는 중입니다.
4. 병아리 10일차의 우리 아이들
병아리의 성장과 함께 제 아이들도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병아리의 탄생도 지켜봤고, 병아리의 죽음도 경험했습니다.
쑥쑥 자라는 병아리들을 보면서 등교 전에 일찍 일어나 병아리 똥도 치우고, 모이통도 채워줍니다.
하교 후에도 똑같이 청소하고 모이통 채워주고 한참을 병아리와 놀고 있습니다.
벌레라면 질색팔색을 하며 날파리에도 기겁하는 녀석들인데 작은 아이(2학년, 만 7세)는 병아리에게 먹이겠다고 창틀에서 발견한 죽은지 꽤 된 모기 한 마리를 화장지를 뜯어서 살짝 잡아다가 병아리들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그 후 몇 분간은 화장지로 잡은 모기 다리의 촉감이 아직도 느껴진다며 몸서리를 치긴 했습니다.
이렇게 저희 아이들은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기르는 중입니다.
병아리가 닭이 되기까지 한 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달 정도면 이미 영계라고 불릴 수준으로 크기 때문에 도심 속 일반 가정에선 키우기 힘들 것입니다.
육추기도 좁을 테고요.
부디 남은 2~3주 간 병아리들이 별 탈 없이 쑥쑥 잘 크다가 할아버지댁으로 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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